
02. 나를 사랑하는 커다란 이유 중 하나, 나를 움직이게 하는 커다란 이유 중 하나.
타투를 받고나서 가장 크게 변화한건 내 자신을 긍정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내 스스로에게 확신을 가지게 된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 10대는 내 스스로를 부정하느라 시간을 보냈다. 그때는 스스로를 긍정하기가 극한의 난이도라는건 다들 잘 알듯 나도 스스로를 미워하느라 하루하루 스케줄이 꽉 차있던 사람이었다. 지난편에서 말했듯이 회피하며 난 거절 당하거나 부정당할거라 생각하고 해야할 일들을 하지 않은 적들이 많았다. 아직 어리니까 그게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두루두루 용서받을 수 있었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다들 고맙게 생각해요. 그런 나였지만 한 숨 한번 크게 쉬고 그래 어쩌겠냐. 하고 넘겨준 그 순간을 감사하게 생각해요. 아무튼 그런시절들이 있었고 자기객관화라 쓰고 자기혐오가 가득하던 나는 내 신체도 내 성격도 부정했는데, 타투를 받고나서부터는 매일매일 거울 속 내 몸을 찬찬히 관찰하며 사랑해주는 습관이 생겼다. 처음이었다. 내 신체를 긍정하게 된 순간이.
우선 너무 늦었으나 말씀드리면 퇴고는 거의 없이 한 번에 작성하는 글인 만큼 읽어주시는 분들도 다정하게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타투는 1년에 한번은 꼭 받는 연례행사가 되었다. 누군가는 마음먹고 해외여행을 간다던가 가깝고 아끼는 사람들과 애틋한 시간을 보내듯 나는 타투를 받으러 떠나는게 나만의 명절이다. 지금은 시간이 부족해서지만 타투를 막 받기 시작했을 때에는 돈이 부족했기에 알바를 3-4개월해서 날이 무지막지하게 추워지기 시작하는 초겨울 즈음 타투받으러 갈 시간! 을 외치며 설렘 반 기대 반 흥분 반 이거저거 모두 합친 마음으로 문의 디엠을 보냈었다. 그 행복과 재미로 20대를 보냈다. 일이야 하기 싫지만 그거 하나만으로 지루함을 버틸 힘이 생긴다 해야하나. 바닷마을 다이어리에 나오는 둘째언니 요시노가 그런 이야기를 한다. “(좋아하는 것을) 얼른 하나 만들어 세상이 달라보여 미치게 지겨운 일도 견딜 수 있게 돼.” 이렇게 걸맞는 말이 또 있을까. 사랑하는 것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미치게 지겨운 이 하루하루들도 쌓아 갈 수 있는 것이다.
타투를 받으러가는 준비들을 하며 일상을 보내는동안 나에게도 큰 변화가 찾아왔다. 무지하게 더웠지만 더운지도 모르고 온갖 곳을 누비고 사람들을 알아간 2019년이 그 대표적이 예시이다. 두번째 타투는 그 해 처럼 꽤 과감하고 충동적이었다. 첫 타투를 성황리에 마친 나는 두번째 작업은 어떤 것을 받을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다른 작업자의 계정을 들락 거리기도 하고 내가 그림을 그려 생각해보기도하고 즐거운 고민을 하고 있던 찰나 이번에도 역시 h님은 내 마음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멋진 도안을 그려내셨다. 도안은 마음에 들고 저 작품을 꼭 내가 가지고 싶은데 작업 받을 부위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목아래밖에 없었다. 타투를 숨겨야하는 집안에서 살고 있는 내가 이제 옆구리만 숨기지 않고 목뒤 그러니까 등을 숨기며 생활 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은 아주 잠깐이었다. 아니, 이런 끝내주는 도안이 있는데 뭘 고민하느냔 말이야 당장 받아야지 내가 가져야지! 등을 보이지 말라는 무사의 다짐처럼 절대 목뒤를 보이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바로 연락을 드렸다. 제가 그 도안 가져가야겠어요. 뺏기고 싶지않아요.

03. 선생님은 특이한 사람이예요. 그래서 좋아요.
당시의 나는 부모님께 선언했었다. 남들 다하는 휴학한번 하지않고 바로 4년제를 하이패스로 졸업했으니 1년 동안은 내가 용돈벌이 알아서 할테니 앞으로 뭘 어떻게해라 뭘 해라 이야기하지 말아달라고. 그래서 일할 곳을 찾아보다가 처음으로 전공을 살린 일을 해보게 된다. 입시미술은 나도 파들파들거리며 겨우 대학합격을 했으니 불가했고 자신있던 초등미술에 도전해보게 된다. 어릴때 다니던 아파트 상가에 입점해있는 작은 미술 교습소였는데 그당시 원장님은 정말 고마운 분이었다. 첫 시범 근무를 할때도 근로계약서를 꼭 작성해서 챙겨주셨고 늘 내 안위를 물어봐주시고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시는 분이었다. 어쩌면 대학이라는 큰 울타리에서 벗어나 기본아이템 나무 몽둥이만 들고 세상에 나온 나에게 세상이 좋은사람도 많은 것을 알려준 분이었다. 지금보다 더 본인의 고집이 굉장했던 다듬어지지 않았던 나를 늘 관심가지고 응원해주셨는데 내가 당시에 키아누리브스에 미쳐서 그림을 그리고 스티커를 만들고 돌아다닐 때도 자기도 한장 달라며 웃으시던 분이었다. (오타쿠 곁에서 재미있으셨다면 너무 다행입니다 원장님..) 그래도 근무할 때 타투가 보이진 않으니까 괜찮겠지 하고 받았고 쉬는 시간에 잠깐 원장실에 들어가서 비판텐을 바르는데 타투가 너무너무 멋지다며 박수를 쳐주시기도 했다. 나중에 가서는 제가 집에서는 부탁할 사람이 없는데 작업자분 보내드리게 발색샷을 한 장만 찍어주실 수있나요 하고 부탁도 드린 적이 있었다. 이런.. 강사선생님 세상에 별로 없겠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나중에 일을 관두고 나서도 그날들을 회상하며 원장님과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꽤 따뜻한 기억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다. (상단에 첨부된 사진은 당시 실제로 원장님이 근무끝나고 찍어주신 발색샷입니다.)
04. 등 타투는 도대체 친구 없는 사람은 타투 친화적인 가족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요?
목아래 타투도 관리는 쉽지 않았다. 나중에 더 큰 위기가 찾아올지 모른채 거울을 보고 내 뻣뻣한 유연성을 원망하며 비판텐을 최대한 얇게 발라보겠다고 난리를 쳤었다. 친구를 만나게되는 날엔 한번씩은 부탁을 했었던 것 같다. 야. 나 한번만 발라줘 아까 바르다가 담올뻔했거든. 등 긁어달라는 말은 안 해도 타투연고 발라달라는 친구 어떤데. 공익광고해야된다 생각해 타투는 관리를 잘해야 발색이 잘나옵니다 고통을 이겨낸 타투 관리를 잘합시다!
05. 등에 뱀 타투 있는 사람이 저예요!
타투와는 별개의 이야기지만 글 초반에 말했듯이 2019년은 저에게 아주 의미가 큰 해입니다. 이때 시간도 많고 체력도 지금보다는 많고 식욕도 왕성하던 저는 마침 저처럼 시간많고 체력많고 마음 맞는 사람들을 트위터에서 만나게 됩니다. 존윅3가 극장에 걸리고 동대문 메가박스에서는 올나잇 상영회를 했었습니다 1,2,3편을 연달아 밤새 상영해주는 이벤트였는데 아직 밤샐 기력이 있었던 저는 저녁시간에 동대문으로 향했습니다. 그당시에 알게된 트위터 가족들을 처음만나는 날이기도 했죠. 매일 만나는 사이지만 실물은 처음보니 긴장도되고 설렘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밤이 찾아오고 동대문메박에 들어서며 트위터 가족들에게 말했습니다. 흡연실에 타투있는 사람이 저예요. 아무튼 저니까 말걸어주세요. 보고싶어요! 그렇게 만난 분들을 지금까지도 아끼며 지내고있습니다. 매트릭스처럼 ‘흰 토끼를 따라가라’를 오마주해서 따라해봤어요. 에너지와 충동성이 넘쳐흐르던 제가 평소라면 전혀 그럴사람이 아닌데 영화가 끝나고 집에 조용히 가려던 트친을 붙잡고 같이 얘기를 나누다 첫차를 타러가기도 했고 겁도 없이 누가 나를 찾아올 줄 알고 날 찾아요! 라고 외치고 다녔던 것을 생각하면 그해의 여름은 정말 재밌을 수 밖에 없었고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서 그 뜨거운 여름이 화끈한 여름이 될 수 있었구나 추억합니다. 나의 타투들은 당신을 보고싶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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