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A_DDAMAE/Tattoo_history

02. 이번 챕터만큼은 다크모드가 아닌 라이트모드로 쓰고싶어.

dda-ddamae 2025. 2. 18. 10:05

 

06. 목 뒤는 아무것도 아니다! 힘든 건 빨리 겪는 것이 좋다!

 

        목 뒤 타투가 아물어가고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나니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여름동안 혹독하게 목 뒤 타투를 가족들에게 안 들키기 위해 사수하듯 숨기며 보내니 가을이 찾아오는게 반가웠다. 반갑다 긴소매야! 반갑다 터틀넥아! 그러니 더 큰 욕심을 내볼까? 여름동안 사람들을 만나고 가을이 오니 여행을 떠났다. 학원일도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1년 계약기간이 있다는 것이 아쉬울만큼 안정적이고 평화롭고 충만한 하루가 이어졌다. 수업 가기 전에는 카페에 들러 오전시간 내내 그림을 그리고 일기를 쓰고, 쓰고 싶은 이야기들을 쓰다가 오후가 찾아오면 버스를 타고 학원으로 향했다. 늘 찾아오는 아이들과 그림 진도가 느리다며 더 해보자고 실랑이도하고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뭘 하고 지냈는지 요즘엔 어떤지 작은 이야기들을 나누며 수업을 했다. 아이들 역시 고맙게도 수업을 꽤나 잘 따라와줬다. 그러다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이 엉성하게 씻어둔 얼룩덜룩 파레트를 씻고 물감을 짜고 물통을 정리하고 바닥을 쓸고난 뒤 앞치마를 걸어두고 원장님과 30분가량을 수다를 떨다가 각자 집의 저녁시간에 쫒기기 시작하면 가방에 넣어둔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고 함께 문을 잠그고 퇴근했다.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오늘도 즐거웠고 다음 출근 때는 어떻게 수업을 해야 아이들도 나도 기분상하지 않게 금방 끝낼 수 있으려나 생각하며 하루가 어땠는지 돌아보는게 마무리 일과였다. 당시에 졸업 후 오랜만에 캔버스 작업을 해보기도 했고 지금은 연락하지 않지만 새로운분을 만나서 나와는 다른 세계를 경험해보기도 했었다. 이렇게 만족스러운 하루하루가 이어지는데 내가 좋아하는 거 하나 더 얹어두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했다.

 

 

07. 모두가 어쩌면 본인만의 행복이 간절했던 시대

 

       19년부터 시작했던 근무가 거의 마무리 되어가는 때였다. 2020년이 다가올 때는 모두들 미래에 대해 기대했고 나 역시도 이제는 20대 중반이라는 구간을 지나는구나하는 새삼스러운 기분을 느끼며 새해를 맞이했었다. 그러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찾아온다. 기존에 1년보다 좀 더 근무하기로 했던 미술학원도 격리의 범위가 커지고 등교가 중단되고 출근인원이 반토막나고 모든것이 비대면으로 바뀌고 백신이 나오지도 않았을 때라 원장님은 나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근무가 어려울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모든 것이 위축되었다. 거리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고 나 역시도 잠깐의 휴식기를 가지며 여유롭다 느끼는 것도 잠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사태를 망연히 지켜보기만 해야했다. 내가 감염될까 이전에 앞으로 내 미래를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해 많은 혼란을 느꼈다. 미래가 가능은 한걸까 라는 생각도 뒤따라왔다. 이대로 세상이 끝나버리는게 아닐지 생각도 해봤던 것 같다. 그러다 이렇게 생각만 많아진채 방구석에 있고 싶지 않아져서 지난해에 해온 강사를 좀 더 심화해서 직장으로 삼아볼까 라는 생각에 이번엔 더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미술학원에 근무하게 된다. 잠깐 파트타임으로 근무하는 것 과는 다른 세계였다. 아이들을 챙겨야했고 등원차량을 탑승해야했고 수업을 내가 준비해야했고 기본재료는 주어지지만 부가적으로 챙겨야하는 것들은 내가 구매도 해야했다. (돌아보면 말도 안되는 곳이긴하다.) 코로나로 모두가 예민할 시기이니 더 신경이 곤두선채 일해야했다. 그때는 어리기도 해서 여기 아니면 날 받아줄 곳이 없을거야 라는 생각도 들었었다. 그래서 합리적이지 않은 근무환경에서도 위축된채 묵묵하게 근무를 했다. 지난해 까지만해도 뭐든지 자신만만했던 내 모습을 하나 둘 씩 잃어가고 있었다. 돈은 벌렸지만 예전만큼의 두근거림이나 설렘은 느껴지지 않았던 시기였다. 아이들은 고맙게도 사랑스러웠고 그중에는 나같은 성격을 가진 아이를 만나서 서로 겉으로 표현은 안하지만 뒤돌아서는 서로를 칭찬하고 다음주 언제오지 다음수업 언제오지 빨리 수업해주고싶은데, 선생님 보고싶은데. 하는 일들도 있었다. 작은 행복을 챙기려 노력하며 현재에 집중했지만 당시를 떠올리면 참 우울하고 막막하고 답답했다. 미래를 도모할게 아니라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게 급했다. 수업에는 열정을 쏟았지만 퇴근 후에는 축축하고 눅눅한 무기력감을 느끼며 집에 돌아가면서 2020년의 연말이 찾아오고 있었다.

 

 

 

08. 어떨 때는 일부러 고통을 찾아서 걸어갈 때도 있다.

 

        지난번 타투를 받고 해가 바뀌었으니 하나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1년마다 한번씩 있는 명절을 놓치기 싫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근무를 하면서 내 영혼이, 생각들이, 평화들이, 그리고 사랑이 죽어가는 기분이 싫었고 타투를 받으며 아픔을 느끼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아직 놓지 않았다는 생명력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19년에 목 뒤를 사수했으니 이제 등을 건드릴 차례였다. 면적이 큰 만큼 한번 채울거라면 질리지않고 마음에 쏙 드는 작업을 받고 싶었다. 방앗간을 참새가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법 이번에도 h님의 도안들 중 마음에 쏙 드는 도안을 발견했다.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이번에도 제가 이 도안을 꼭 가져야겠어요. 근데 지난번 타투 아래에 받을거라 조금만 수정해서 받아도 될까요?

 

 

©️h_tattooer .2020

 

 

 

        작업을 받으러 갈 당시에 답지않게 긴장을 꽤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정이 따로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코로나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라 늦게까지 밖에 있는게 일상이 아니던 시절이었고 그래서 미리 집으로 향하는 기차를 예매해두고 작업을 받기 시작했는데 기차시간이 다가올수록 동공지진이 일었다. 작업대에 엎드린 채 기차표를 예매, 취소를 두세번정도 번복했다. 하지만 작업자분을 재촉하고 싶지도, 이 작업을 끊어서 받고 싶진 않았다. 오늘 기필코 이 도안을 집에 같이 데려가리라 라인을 다 따야 다음에 채색을 하신단 말이야! 그냥 여유로이 받고 집에 돌아갔으면 되었을 일을 바보같이 굴었다. 하긴 지금 생각해보면 통금이 따로있던건 아니었지만 그 당시에 팬데믹 + 늦게 들어가는 것을 질색하는 집안 분위기를 생각하면 과감하게 늦게 가도 돼! 라는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엎드린 채 혼자 조마조마하며 남모르게 진땀을 흘렸다. 나의 조바심이 무색하게 라인이 모두 완성되었을 때 같은 작업자가 그렸으니 어울리는게 당연하지 않아? 라고 다들 말할 수는 있겠지만 두 도안이 서로를 위해 존재했던 것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등에 받은 작업의 관리가 시작되었다. 소제목처럼 진짜 까다로운 관리가 시작 된 것이다. 내가 항상 친구들이나 주변사람들에게 얘기하는 것이 있는데 타투 많은데 예쁘게 자리잡은 사람과 친구를 해도된다. 열심히 비판텐 안 마르게 발라주고 성실하게 꾸준할줄 아는 사람이다 라는 얘기. 작업은 완성되어서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이 내 몸에 새겨진 것에 책임을 져야하니 손 안 닿는 곳은 어떻게 연고를 발라야하나 작업실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 고민이 시작되었다. 온 방안을 뒤져서 등에 닿을 만한 것을 찾아다녔다. 벽에다 바르고 등을 비벼야하나 효자손을 하나 새로 장만해야하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모종의 방법을 찾고 나서는 집에 귀가하자마자 낮동안 밖에서 바른다고 발랐지만 그래도 덜 발린 곳이 있나 꼼꼼히 거울로 체크하고 연고를 발랐다. 보통 2주정도 연고를 마르지 않게 집착적으로 발라주며 집중관리를 하고 그 후에는 딱지가 점점 탈각되니 간지러움과의 싸움이다. 당시에 등이 가려워서 길가다가 몇 번이고 두둠칫 두둠칫 어깨춤을 추고 안 긁으려고 갑자기 등을 후려치는 사람이 되기도 했다. 타투는 아픔을 참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진짜 싸움은 연고 바르기와 간지러움이다.


      그렇게 나와 함께 하게 된 타투는 지금도 나를 행복하게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긴 한데 당시에는 씻으려고 상의를 벗는 게 즐거울.. 정도로 만족감이 컸다. 등에 받는 타투는 장점이 있는데 평소에는 내가 볼 수 없으니 잊고 지내다가 가끔 씻을 때나 거울에 비춰져서 오랜만에 그 친구를 만난다는 것이다. 잘 있었구나 역시 멋지구나 역시 너때문에 내가 산다. 하며 안부인사정도 건넬 수 있다는 것 그러니 정말 마음에 드는 도안이 있거나 원하는 작업이 있다면 등 타투를 추천해본다.

 

 


09. 타투에 의미는 그냥 넣고 싶을 때 넣는 게 내 방식이다.

 


        이쯤되면 누군가는 궁금할 수 도 있다. 타투를 받을 때 따로 의미부여를 하시나요? 누군가는 사랑하는 이의 의미를 담기도 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슬픔이나 행복의 의미를 담기도 한다. 스스로를 응원하는 독려하는 의미를 담기도 한다. 같은 소재로 작업을 받더라도 각자 사정이 다르고 의미가 다른게 타투다. 나도 종종 의미에 대한 질문을 받곤 한다. 무슨 의미로 받으신 거예요? 그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아무의미 없어요. 도안이 아름답잖아요. 였는데 이번 챕터에서 작성한 등 타투를 받으면서 생각이 좀 달라졌다. 의미를 넣겠다고 해서 넣어진건 아니고 내가 그동안 타투에 의미를 따로 부여하지 않았던 건 다른게 아니라 내가 의미부여를 해서 작업을 받았는데 내 생각이나 가치관이 달라져서 그 타투를 더이상 사랑하게되지 않는게 두려웠다. 따로 내가 레이저 시술을 원해서 받지 않는 이상 타투는 나의 곁에 죽을때까지 남는다. 세포들이 타투잉크를 뱉어내고 죽어도 또 다른 세포가 그 타투잉크를 삼켜서 그 모습이 유지된다. 내가 죽어서 생명활동이 끝나서 세포가 더 이상 새로 생기지 않는 이상 언제든 내 곁에 함께 해주는 것이 타투다. 그래서 의미를 부여하는게 부담스러웠다.

 

        그러다 이번에 받게된 타투를 보며 생각했다. 근데 의미라는거 그때그때 달라져도 되는거 아니야? 일단 도안이 아름다우니까 받고! 의미는 나한테 맞춰서 넣어주는거야 흔히들 작품이란 결국 창작자가 어떤 의도로 작품을 만들어냈던 관람자가 그 의미를 부여할 때 작품은 생명력을 얻고 관람자의 의도대로 그 작업은 제 창조자의 품을 떠나 제 갈 길을 떠나는거 아니겠어?

 


        찬찬히 도안을 살펴보니 뱀한테 물려서 죽어가는 새의 모습을 한 도안이라면 매순간 마다 새로운 일을 겪고 경험을 쌓으며 살아가는 나를 발견 할 수 있었다. 나는 삶을 살아가면서 뱀이 될 수도 있고 뱀에게 물려죽는 새가 될 수도 있다. 내가 과거 어리석거나 약해졌던 나를 잡아먹고 더 성장해 강해진 내가 될 수도 있고 유약했던 내가 한층 성장한 나에게 잡아먹히며 다시 태어나길 희망하는 동시에 현재의 악의 혹은 비틀려버린 모습으로 가득 찬 내가 순수한 과거의 나를 집어삼키기도 한다 는 의미를 부여했다. 결국 내가 나를 흡수하고 내가 나에게 흡수당하면서 삶은 이어진다 는 결론에도 도달했다. 당시에는 내 스스로의 실제를 느끼기 위해 작업을 받았고 지금은 이 글을 쓰면서 당시에 생각해둔 의미를 다시 텍스트로 정리하니 이 도안을 내가 매번 사랑할 수 밖에 없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DDA_DDAMAE .2024